"우리는 뜻밖의 우연으로 45억년이란 세월동안의 아주 느리게 진행된 생물학적 진화의 소산이다. 진화가 멈추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인간은 과도적인 존재이지 최고 절정에 있는 피조물이 아니다. 우주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 인간은 처음도, 마지막도, 그리고 최고라고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Carl Sagan, The Cosmic Connection

2000년 01월 1일

밤하늘로의 초대

별은 왜 보는가

숨 돌릴틈 없이 바쁜 우리 현대인들에게 ‘별’이란, 언뜻 영화 속의 괴물들이 날아다니면서 마구 총질을 해대는 싸움판이나, 젊은 시절 연애 편지에 필수적으로 인용되곤 하는 싯구절속의 한 단어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만일 혜성 하나가 날아와 우리 도시에 충돌하여 직장과 가정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접하거나 일생에 단 한번밖에 볼 수 없다는 핼리혜성이 찾아왔다는 이야기, 혹은 자신의 별자리와 걸맞는 배우자감은 무슨 별자리 태생일까 하는 등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라면 모를까, 언제부터인지 ‘별’은 우리들과 무척 동떨어진 무관심의 존재, 말 그대로 ‘별볼일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날 뒷마당에 침낭을 깔고 누워 맞부딪치는 이를 악물고 별똥별 떨어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거나, 모처럼의 휴가때 50kg에 달하는 망원경을 짊어지고 인적이 드문 오지로 떠난다고 하면 영락없이 별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별이란 알고보면 그토록 실생활과 괴리된 허상만은 아닙니다. 태초에 큰 강줄기 근처에서 함께 모여 살아가기 시작했던, 원숭이를 단단히 닮은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 밤하늘의 별이란 일상 생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매우 중요하고도 친밀한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밝은 별 몇 개를 익혀둬서 어두운 밤에 숲속 한가운데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고, 달의 모양이 변하는 모습과 태양이 뜨고 지는 위치가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는 사실을 이용해 달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서양에서는 별들이 운행해가는 모습을 인간들의 인생역정과 결부시켜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점을 치기도 했고, 동양에서는 천문학을 ‘황제의 학문’이라 하여 황제의 허락없이 천문대에 올라가 기자재를 만진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참수형에 처함으로써 우주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오랜 옛날의 일이고 지금 우리들이 점성술을 이용해서 운세를 점친다거나 역법을 공부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별이란 마치 포근한 어머니 품속과도 같은 존재여서 어느 구석엔가 항상 웅크리고 있는 그것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는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 내면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술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잠시 올려다 본 밤하늘, 만약 운이 좋아 마침 밝은 별똥별 하나가 길게 선을 긋고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그 어떤 누구도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별의 무엇을 보는가

밤하늘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무려 3천여개에 달하고 또다른 3천여개가 땅밑에 숨어 있으므로 1년 사계절 동안 대략 6천여개의 별을 볼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이 별천지의 한복판에 우유빛 은하수가 가로지르고 있고 이를 배경으로 해서 이나 금성, 토성, 목성과 같은 태양계 가족들이 유유히 흘러다니며, 종종 별똥별이 눈깜짝할 새에 할퀴듯 지나가기도 합니다. 게중 큰 놈은 격렬한 소리를 내거나 그림자를 만들 정도로 밝은 경우도 있어서 별똥별은 밤하늘에서 가장 역동적인 볼거리로 꼽힙니다.

오늘날에도 신문 일일 운세난을 비롯해서 향수 이름에 이르기까지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별자리’의 역사는 무려 5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 등장하는 목동처럼 예민한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양치기들이 별들의 배치를 동물이나 사람 형상으로 제멋대로 연상한 것이 별자리의 시작으로, 여기에 그리스 신화가 곁들여지고 합리적으로 정리되어서 오늘날의 88개의 별자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달이 근처에 오면 대부분의 별자리는 밝은 달빛에 묻혀 사라지지만 오리온 자리만은 사라지지 않는 모습(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사냥꾼 오리온은 연인 사이였습니다)이나 동쪽에서 전갈자리가 뜨면 금새 서쪽 땅밑으로 오리온 자리가 도망쳐 버리는 모습(전갈은 아폴로가 오리온을 죽이기 위해 풀어놓았습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성과 직녀성이 외롭게 떨어져 있는 모습 등 신화를 절로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별자리들이 많습니다.

작은 망원경을 이용하면 고리를 두른 토성의 요염한 모습이나 목성과 그 위성들이 다정스레 모여있는 모습, 각양각색의 별들이 여러가지 신비한 모양으로 모여있는 모습들, 달표면의 진기한 언덕과 계곡들의 모습, 뿐만 아니라 나는 새나 먹다 남긴 사과모양 등 재미있는 형태의 가스덩어리들에 이르기까지 밤하늘에는 멋진 볼거리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만큼이나 숨이 있습니다.

별을 어떻게 보는가

서울 밤하늘이 삭막한 이유는 대기오염보다도 주위의 밝은 불빛들에 의해 별빛이 묻혀버리기 때문인데, 그렇다해도 변두리의 주택가에서는 맑게 개인 날 밤 30개 이상의 별들이 보이고(특히 밝은 별들만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별자리를 익히기에 쉬울 수도 있습니다), 새벽녘에 아파트단지 너머로 떨어지는 밝은 별똥별을 찾아내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대로 관측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서울을 벗어나야 하는데, 주위에 인가가 적고 남쪽 하늘의 시야가 트인 교통이 편리한 곳이 적합합니다.

지난 1986년도에 핼리혜성이 지나간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도 아마츄어 천문에 관심이 고조되어 수많은 천문 동호회들이 결성되었고 관련 서적과 잡지도 상당량 출간되어 나와 있으며 천체 망원경을 전문적으로 수입, 판매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별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천체 망원경은 백만원을 호가하는 매우 비싼 장비이기 때문에 이보다 쌍안경을 권하는데, 특히 구경 7cm, 배율 50배 정도의 쌍안경은 가격이 10만원 전후로 저렴한 편이고 다루기 편하며 성능면에서도 별을 관망하기에 별 무리가 없기 때문에 초보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종입니다.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 여러가지 잇점이 있는데 우선 회지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관측회에 참가하면 자신 소유의 장비가 없어도 공용 천체망원경을 함께 이용하여 관측할 수도 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폭넓게 사귈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별은 아무리 가까운 놈도 빛의 속도로 수십년 이상씩 쉬지 않고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먼 곳에 있지만, 그곳은 언제나 고개를 들면 우리 머리위에서 빛나는 너무나도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지학시간에 우리들 머리속을 뒤집어 놓았던 천구, 자오선, 춘분점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고 소개팅때 파트너 눈치 보듯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저것은 하느님이 우리들 모두에게 멋진 별들을 하늘 가득히 사주기 위해 반짝이는 동전을 슬롯 머신 투입구 속으로 넣고 있는 것이라고.

 

2000년 1월 1일 01시 00분 26초, albireo에 의해 작성됨

관측 정보著者의 辯 • (0) Comments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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