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01월 1일
과학사 책을 보면, 예컨대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었다느니, 뉴튼역학이 성립되고, 다시 그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자리를 양보했다느니 말하듯이, 인간 사고방식 등의 변화의 역사로서 과학사를 엮은 것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것이 보통으로 쓰는 방법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확실히 과학이란 인간이 자연을 머리로써 포착하는 일이므로 인간의 사고방식이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습니다만, 그것만이면 과학사는 철학사와 같은 양상을 띠기 일쑤입니다. 그래서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 과학은 철학과는 다르다, 철학사에는 없는 무언가가 과학사에는 있다고 말하며, 그 주된 것이 실험이나 관측 기구의 문제입니다.
망원경이 발명되거나 또는 현미경 같은 것이 생기면,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사고방식이 전환되는 일이 과학사상 종종 일어납니다. 이것을 무시하고는 진정한 과학의 발전을 다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망원경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우주로 인간을 유혹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우주관을 일변시켰습니다. 현미경은 극미의 세계로 인간의 눈을 뜨게 하고, 역시 인간의 사고방식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대 천문학은 지동설이나 뉴튼 역학보다도 오히려 망원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반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망원경은 천문학자의 상징으로 보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의 초상 한 옆에 망원경이 그려져진 것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물론 나중에 상상으로 그려진 것이며, 코페르니쿠스 시대에는 망원경은 없었고, 따라서 코페르니쿠스 자신은 망원경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망원경을 처음으로 천체로 돌린 것은 갈릴레이라고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가 1610년 쓴 <별세계의 사자>라는 책에 따르면,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을 만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스스로 그 원리를 생각하고 망원경을 설계하여 천체관측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하면 갈릴레이는 망원경의 발명자는 아닙니다만, 망원경을 써서 과학사상 의의있는 일을 하고 세상을 향해 보고한 것은 그가 최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망원경을 목성으로 향하게 한 갈릴레이는 그 둘레에 위성이 돌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태양 주위를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돌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지동설에 대한 확신을 깊게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발견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누구든지 그런 뉴스를 들으면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싶어지겠죠.
그 중에는 갈릴레이가 들여다본 우주는 렌즈를 통한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망원경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한 학자도 있었습니다만, 학문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반 사람들 사이에는 인간의 상상력을 북돋우는 위대한 발명이라고 하여 삽시간에 퍼졌고, 중국이나 나아가서는 일본에까지 망원경이 전해지는 데에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갈릴레이가 만든 망원경은 현재 피렌체의 과학박물관 - 통칭 갈릴레이 박물관 - 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구경 38 mm, 초점거리 1,280mm, 그리고 배율 30배인 작은 것으로서, 현재는 국민학생이라도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것입니다.
곧 더욱 큰 것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만, 이 새로운 무기를 입수한 사람들은 필사적이 되어 그것을 천체로 향하게 하고 월면이나 행성들의 관측에 나섰습니다. 지상의 군사용으로 사용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관측 정밀도를 높이기 위하여
그러나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천체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먼저 달의 표면, 그리고 행성이나 그것을 도는 위성, 더욱이 선글라스를 사용하면 태양의 흑점도 관측할 수 있습니다만, 모두 태양계 위치의 정밀 관측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갈릴레이가 사용한 망원경은 접안경이 오목렌즈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립상이 얻어집니다. 지상의 물체를 보는 데에는 이것이 안성맞춤입니다. 그러나 케플러 등은 접안경에 볼록렌즈를 썼습니다. 그렇게 하면 상은 도립상이 됩니다만 천문학용으로 사용하는데에는 별로 지장이 없고, 오히려 큰 이점이 생깁니다. 다시 말하면 접안경을 볼록렌즈로 하면 대물경의 초점이 접안경 앞에서 이어지게 되고, 바로 그 곳에서 열십자로 거미줄을 치거나 해두면, 천체의 위치를 정밀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리하여 망원경 덕분에 천체 위치 관측의 정밀도를 각별히 높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역사를 돌이켜봅니다. 그리스 최대의 천문학자라고 일컬어진 히파르코스가 기원전 2세기에 만든 성표에서는 그 정밀도가 각도로 보아서 4분 정도입니다. 16세기의 티코 프라헤는 거대한 4분의 등을 써서 정밀도를 1분 정도로까지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안에 의지하는 한 관측 정밀도의 향상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고대인과 다름없는 눈을 가지고 관측해서는 고대의 수준에서 별로 진보할 수가 없습니다. 관측기구를 10배의 크기로 하면 정밀도가 한 자리 높아진다는 이론입니다만, 그렇게 큰 관측기루를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며, 또 측미척과 같은 것을 사용하더라도, 관측상의 갖가지 제약이 있어서 생각처럼 정밀도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측미척이란 두 천체 사이의 아주 작은 각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구를 말합니다.
17세기의 육안관측에서 최고의 정밀도를 나타낸 헤벨리우스라는 천문학자는, 이미 망원경이 만들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밑지 않고 육안 쪽이 바르다고 하여, 육안의 정밀도를 2분의 1분대로까지 높였습니다.
그러나 망원경에 측미척을 붙이고 관측을 한 플램스티드에 이르자, 관측 정밀도는 비약적으로 향상하여 10초 정도로까지 되었습니다. 더욱이 18세기의 프래들리는 정밀도를 2초로 높이고 그것으로 광행차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가 되자 베셀이 0.2초라는 정밀도를 달성합니다만, 여기까지 오면 코페르니쿠스 설을 실증하기 위해 필요한 연주시차를 똑똑히 관측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교적 가까운 항성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된 것입니다.
베셀의 작업은 19세기초 무렵의 일입니다만, 19세기 중엽이 되면 천체 관측에 사진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것은 천체를 망원경을 통해서 육안으로 보는 대신에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나중에 현상하여 콤파스 등으로 정밀하게 계측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함으로써 정밀도를 0.1초로까지 높일 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19세기말이 되면 장초점 망원경을 써서 0.0025초의 정밀도를 달성했습니다. 망원경은 단지 배율을 높인다고 정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높은 배율이라도 상이 희미해져 있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개개의 별의 위치가 얼마만큼 선명하게, 정확하게 결정되느냐는 것으로서, 대물 렌즈의 초점이 길수록 향상됩니다.
이렇게 해서 정밀도가 높아지면, 그때까지는 미지였던 갖가지 현상이 발견됩니다. 지구의 위도 변화도 천체관측이 정밀해졌기 때문에 발견된 것입니다.
갈릴레이나 케플러가 사용한 망원경은 렌즈를 조합해서 만든 것입니다만, 또 하나 전혀 다른 원리를 가진 망원경이 있습니다. 렌즈의 굴절에 의한 굴절 망원경에 대하여 후자를 반사 망원경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포물경의 반사에 의해서 망원경의 기능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데카르트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논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것을 성공시킨 것은 뉴튼입니다. 이 후 천문학상 이 두 종류의 망원경이 사용되었습니다.
수차의 문제
그러면 굴절 망원경과 반사 망원경의 우열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을 보려면 광학계에 따라다니게 마련인 수차에 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수차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우선 색수차에 관해서 살펴봅시다. 여러분, 보통의 값싼 단일렌즈를 써서 태양빛을 통하게 해주면 그 상이 7색의 무지개처럼 되는 것을 본 일이 있을 것입니다. 빛이 색에 따라서 파장이 달라 조금씩 다른 굴절률을 갖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이 현상입니다. 빨간 빛은 굴절률이 작고, 파란 빛은 굴절률이 크다, 그렇게 하면 파란색쪽은 짧은 초점거리에서 상을 맺고, 빨간 빛이 맺는 상과의 사이에서 위치가 어긋나고 맙니다. 이것이 색수차로서 나타납니다.
다음에는 구면 수차가 있습니다. 이것은 렌즈의 중앙에 닿는 빛과 주변에 닿는 빛은 상을 맺는 자리가 조금 어긋난다는 것이 원인입니다. 그렇게 하면 렌즈를 통한 빛은 선명한 상을 맺지 않고 조금 뿌예지고 맙니다. 이런 계산은 기하광학에 의해서 가능합니다만, 그것에 따르면, 상의 폭, 즉 뿌예지는 정도는 렌즈 구경의 세제곱에 비례합니다. 이것은 카메라를 사용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렌즈의 조리개를 크게 하여 구경을 작게 해주면 선명한 상이 얻어지며, 반대로 조리개를 느슨하게 열면 상이 뿌예진다고 하는 원리입니다.
게다가 코마수차라는 것이 있습니다. 구면수차에서는 곧바로 앞에서 와서 렌즈에 직각으로 닿는 빛만 문제로 삼습니다만, 바깥 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에 관해서는 어떠냐 하면, 이것도 상이 한 군데에 집중해서 맺어지지 않습니다. 렌즈를 태양빛에 대고 태양 방위로부터 약간 기울여서 비끼게 하면, 그 상은 바로 혜성의 꼬리 같은 모양이 되는 것이 확인되는데, 이런 현상을 코마수차라고 합니다. 이것은 렌즈 구경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렌즈에 관한 수차였습니다만, 반사경 쪽은 어떻겠습니까? 이 경우 색수차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빛의 색깔, 즉 파장에 따라서 굴절률은 다릅니다만, 반사율은 같기 때문입니다. 또 구면수차도 없습니다. 포물경의 경우, 초점에 선명한 상이 지어집니다. 그러나 반사경에서는 코마수차가 두드러지게 인정됩니다. 반사경의 경우 비껴온 빛은 상을 한 점에 맺지 않으며, 그 정도는 렌즈의 경우보다 심합니다.
이리하여 렌즈와 반사경을 비교해보면, 렌즈에서는 갖가지 수차가 생기는 한편, 반사경에서는 그런 염려가 없지만, 다만 비껴오는 빛에는 대단히 약하다고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반사망원경은 굴절망원경보다도 시야가 좁아진다는 결점이 생깁니다. 따라서 넓은 영역에 걸쳐서 관측을 하는 경우에는 반사망원경이 불리하다고 하겠습니다.
수차에는 천문학자들은 계속 괴로움을 받아왔습니다. 단일렌즈를 사용한 굴절망원경에서는 색수차는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색수차의 정도는 굴절률이 크면 그만큼 큰 셈이므로, 초점거리가 긴 렌즈를 사용하게 됩니다.
망원경의 배율은 대물경의 초점거리를 접안경의 초점거리로 나눈 값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배율을 너무 희생시키지 않고, 더구나 색수차를 작게 하려고 하면, 초점거리가 긴 렌즈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망원경은 긴 경통을 가진 것이 됩니다. 그래서 17세기에 주류였던 단일렌즈에 의한 굴절망원경도 이윽고 그 한계에 부딪쳐 반사망원경의 시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반사망원경의 경우, 거울은 렌즈보다도 훨씬 크게 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용이합니다. 18세기의 W.허셸은 구리 2, 주석 1 비율의 합금인 경통을 써서 직경 1.2m라는 큰 포물경을 만들었습니다. 18세기에는 반사망원경 쪽이 굴절망원경보다도 우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반사망원경으로써는 시야를 마음대로 넓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의 천문학의 요구에서는 천체를 찾기 위해 시야를 되도록 넓게 잡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1758년이 되어 색지움 렌즈가 발명되었습니다. 이것은 상이한 재질로써 되어있고, 따라서 굴절률도 다른 두 종류의 유리렌즈를 조함함으로써 색수차를 제거하도록 설계된 복합렌즈입니다. 색지움 렌즈의 출현은 천문학자에게 커다란 복음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기하광학에 의한 수차의 연구도 진전되고, 또 19세기 전반에는 유리공업의 발달로 크고 순수한 렌즈이자 갖가지 굴절률을 가진 것이 얻어지게 됩니다. 이리하여 19세기에는 색지움 렌즈에 의한 굴절 망원경이 주류가 되고, 특히 세기 중엽부터 말에 걸쳐서 융성을 극했던 것입니다.
천체 망원경에는 두 가지 조건이 요청됩니다. 하나는 분해능이 뛰어난 것입니다. 비전문인의 경우 망원경이라고 하면 즉시 배율을 문제로 삼습니다만, 실제로 배율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19세기 후반부터 사진이 발달했습니다만, 사진으로 찍으면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는 만큼, 망원경 자체의 배율은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배율의 크기보다 오히려 뚜렷한 상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 다시 말하면 분해능이 중요합니다.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을 아무리 확대해보았자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다음에 필요해지는 것은 밝기입니다. 그것에 의해서 비로소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아득히 먼 은하계 밖의 성운까지도 포착할 수가 있습니다. 망원경으로 아주 희미한 빛까지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험식에 따르면 분해능은 구경에 반비례합니다. 다시 말하면, 망원경의 구경을 너무 크게 하면 분해능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한편 밝기 쪽은 기하광학의 법칙에서 구경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이 두가지 조건을 동시에 겸비하기는 꽤 어렵습니다. 그래서 굴절망원경은 분해능의 양호함을 자랑하고, 반사망원경은 희미한 빛까지도 포착할 수 있는 밝기를 특징으로 하게 됩니다.
기술적으로는 19세기말에 반사경을 유리로 만들고 은도금을 하는 방법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와서 반사망원경은 그 기능을 크게 신장하여 굴절망원경을 대신하여 주류가 되었습니다.
굴절망원경과 반사망원경의 우열
여기에서 굴절망원경과 반사망원경의 우열을 정리해 두겠습니다.
굴절망원경은 구면수차 때문에 구경을 크게 할 수 없습니다만, 구경이 작음으로써 분해능이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초점이 긴 굴절망원경은 성상의 분리에 비중을 둔 천체 수색용으로 사용됩니다. 천체의 위치를 정확하게 구하기 위한 도구인 셈입니다. 또 실제로 렌즈의 경우, 구경을 너무 크게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습니다. 코마수차가 적기 때문에 반사망원경에 비해 비교적 넓은 시야가 얻어지는 것도 천체 수색에는 유리합니다. 이와 같이 굴절망원경은 위치 천문학의 목적에 맞는 도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반사망원경은 구경이 큰 것을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용이합니다. 구경이 크면 밝기가 늘어나 아득히 먼 은하계 밖 성운 등의 빛까지도 포착할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 19세기 후반부터 활발해진 스펙트럼 분석에 의해 별의 천체물리학적인 성격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빛을 많이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코마수차가 크기 때문에 시야는 한정됩니다. 따라서 반사망원경은 우주론이나 천체물리학의 목적에 맞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천문학의 학문영역의 차이까지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19세기까지는 천문학의 중심적인 문제는 천체역학이나 천체 수색에 있었고, 그 때문에 위치의 정확한 결정이 요구되었습니다. 19세기가 굴절망원경의 시대였던 것은 이와 같은 사정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굴절망원경으로서 가장 큰 것은 1897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만들어진 야키스 천문대의 40인치 망원경입니다. 40인치라고 하면 102cm나 됩니다.
한편, 20세기에 들어와서 위치천문학이나 천체역학보다도 천체물리학 쪽이 꾸준히 진보했습니다만, 그 배경에는 금세기에 들어와서 반사망원경이 급속하게 발전하여 굴절망원경을 압도했다는 사정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망원경의 변화가 천문학에 있어서의 중점의 이동을 촉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변천을 살펴보면, 천문학이라고 하는 속세를 떠난 학문에도 사회의 움직임이 반영되고 있음을 여실히 읽을 수가 있습니다. 거대한 망원경을 구사하여 우주의 구조를 논한다고 하는 거대 망원경 시대의 출현은 미국 독점자본의 성립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위치천문학이나 천체역학에 관해서는 미국의 해군 천문대와 같은 정보의 천문대 등에서 오래 전부터 초점이 긴 굴절망원경을 써서 착착 데이터를 축적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말부터 미국에서는 독점자본에 의한 자본축적이 진행됩니다. 카네기나 록펠러와 같은 재벌은 유명합니다만, 이런 거대자본은 소득세도 독점금지법도 없었던 미국에서 급석하게 부를 축적해나갑니다.
한편 이민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새로 들어온 이민들이 사회의 저변을 형성합니다만, 이런 이민 노동자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대부호는 생활수준에 천양지의 격차가 생겨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직 노동조합도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의 독점 자본 쪽에서는 사회불안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서 자선사업을 행했습니다. 학문연구도 그 덕을 입어 아낌없는 기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대망원경은 그와 같은 기부의 알맞은 대상이었습니다. 기부자의 입자에서 보면 세계 유수의 망원경을 만듦으로써 자기 이름을 높이고, 학술 문화에 대한 공헌을 선전하는 절호의 기회인 셈입니다. 이라하여 대자본의 원조를 배경으로 미국에서는 거대 망원경 시대가 열렸습니다. 19세기말의 굴절망원경을 기부한 야키스는 시카고의 대보스로서 독직, 매수 등 꽤 악랄한 방법으로 돈을 번 인물이었다는 것과 같은 예가 있습니다. 그 속죄의 뜻일까요, 자기 이름을 머리에 붙인 야키스 천문대를 만들고, 큰 망원경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부호의 기부인 경우, 국립의 수수한 천문대와 달리 지금까지의 것보다 큰, 세계에 으뜸가는 것을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연달아 다투어 큰 망원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유명한 예로서 카네기에 의해서 1917년에 만들어진 윌슨의 100인치 망원경, 록펠러에 의헤서 1948년 만들어진 팔로마 천문대의 200인치 반사망원경 등이 있습니다. 이들 거대 망원경 덕분에 천문학의 양상도 일변하여, 풍부한 데이터를 얻어서 천체 물리학이나 은하계 성운의 우주론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망원경의 구경을 크게 하더라도, 지구상의 대기오염이나 도시의 빛 등으로 인한 방해가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그래서 천문대는 공기가 맑은 높은 산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또 구경을 크게 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망원경을 크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관측용 사진건판의 감광도를 좋게 한다든가, 일렉트로닉스를 구사하여 측광 장치를 개량한다든가 하는 방향으로 중점이 옮아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천체관측에서는 꼭 구경의 크기만을 문제로 하지 않고, 오히려 측광장치 등의 정밀도가 중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교적 시야가 넓은 굴절망원경이라도 코마수차 때문에 시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긴 현재는 육안으로 보지 않고 사진으로 찍기 때문에 사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야의 넓이라는 점에서 혁명적인 망원경이 발명되었습니다. 이것을 슈미트 카메라라고 합니다. 구면의 반대쪽에 고차원의 곡면으로 이루어지는 보정판을 붙여 구면수차와 코마수차를 함께 제거하였고 사야를 넓게 하여 광각에서의 천체 수색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이 슈미트 카메라는 인공위성의 발사가 시작된 1950년대 후반에 대단한 활약을 한 것입니다. 초기의 인공위성은 궤도요소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그것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광각 슈미트 카메라가 필요해지며,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 각지에 슈미트 카메라를 갖추고 인공위성의 추적에 임했던 것입니다.
20세기 전반에 그렇게도 융성을 자랑했던 거대한 반사망원경의 시대도 이미 그 한계에 접어들어 있습니다. 이때까지 천문학의 관측수단이라고 하면 가시광선을 포착하는 데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만, 오늘날에는 가시광선의 범위를 넘어 다른 전자파 영역까지도 인간의 시계 안에 거두어들이게 되었습니다.
먼저 전후에 성해진 것이 전파천문학이며, 빛 대신 전파로써 천체를 포착하도록 레이다, 즉 전파망원경이 구사됩니다. 이로써 가시광선으로 알 수 없었던 부분에도 손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인공위성을 띄워 X선으로 관측함으로써 또 전혀 다른 우주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천문학자의 관심은 이와 같이 가시광선 이외의 영역으로 자꾸 뻗어나가, 현재 흥미의 중심은 가시광선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거대 망원경 시대는 이제 과거의 것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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